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 망명정부 (문단 편집) == 냉전 시기 == 종전 이후 서방측은 [[커즌 선]]을 소비에트 연방과 폴란드 공화국의 국경으로 승인하는 대신에[* 단 소련 점령지역 중에서도 동부의 비아위스토크와 그 주변지역만은 다시 폴란드에 반환되었다. 폴란드는 끝까지 반대했지만 힘이 없었다.] 폴란드를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일환으로 자유 선거를 실시하고자 했지만 우리 [[이오시프 스탈린|스탈린 동지]]께서 그러실 리가 있나... 1947년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1947_Polish_legislative_election|총선]]에서 부정선거가 자행되고, 곧이어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Small_Constitution_of_1947|출범]]한('''폴란드 임시정부''' → '''폴란드 인민정부''') 사회주의 세력들은 [[소련군]]과 합동으로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Anti-communist_resistance_in_Poland_(1944%E2%80%931953)|토벌전]]을 실행하여 [[저주받은 병사들|폴란드 국내군 잔당]][*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Cursed_soldiers|이들을]] [[저주받은 병사들]]이라고도 부른다.]과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Ukrainian_Insurgent_Army|우크라이나 반란군]]을 철저하게 쓸어버렸다. 특히 우크라이나인은 대부분 소련령으로 추방되었고, 잔여 우크라이나인은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Operation_Vistula|비스와 작전]]으로 연고가 거의 없는 폴란드 북부나 서부로 강제이주시켰다. 1952년에는 폴란드 인민 공화국을 선포('''폴란드 인민정부''' → '''폴란드 인민공화국''')하여 소련의 [[속국]]으로 전락하고 말았다. 폴란드 망명정부는 역적들의 소굴로 변한 모스크바파 폴란드에 대하여 [[부정선거]]를 강조하면서 타도를 외쳤고, 폴란드가 [[자유민주주의]]에 바탕한 [[민주공화국]] 체제로 복고할 때까지 런던에 머무를 것을 결의했다. 하지만 힘없는 자의 설움은 여전해서 [[중화민국 국민정부]]와 [[프랑스 임시정부]] 및 영국과 미국마저[* 미국과 영국은 1944년 10월에 포기하기로 결심했는데,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처지였고, 프랑스 임시정부는 영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처지였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연방을 제외한 [[상임이사국]]의 [[높으신 분들]]은 서유럽에서 투쟁하는 [[자유 폴란드군]]들과 폴란드 교민들의 절망을 고려하여 1945년 여름까지 일부러 침묵했다.] 폴란드 망명정부를 외면하였다. 그러니까 모스크바파 폴란드('''폴란드 임시정부''' → '''폴란드 인민정부''' → '''폴란드 인민공화국''')를 연속으로 승인하는 대신에 [[폴란드 제2공화국|전간기의 폴란드 공화국]]과 폴란드 망명정부의 승인을 취소해 버렸던 것. 심지어 대사관까지 폴란드 인민공화국에 내주는 설움을 겪어야 했다. 이들과 [[자유 폴란드군]] 장병들은 종전 직후 열린 승전 기념 행사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. 그나마 [[영국 본토 항공전]] 당시 공을 세운 공군 조종사들은 유일하게 행사 참석 자격을 얻었지만, 이들은 다른 전우들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불참하였다. 한편, 폴란드 본토를 장악한 [[소련군]]과 [[NKVD]]의 든든한 후원(?)으로 [[모스크바]]와 [[루블린]]에서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Polish_Committee_of_National_Liberation|단합대회]]를 화려하게 개최한 폴란드인 사회주의 세력들은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PKWN_Manifesto|혁명공약]]을 발표하면서 '''모스크바파 폴란드'''를 세우겠다는 원대한(?) 포부를 밝혔다. 이윽고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Provisional_Government_of_the_Republic_of_Poland|폴란드 임시정부]]를 창립한 그들은 1947년에 실행한 부정선거를 바탕으로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하는 '''폴란드 인민정부'''를 수립했으며, 1952년에 아주 확실하게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'''[[폴란드 인민공화국]]'''을 선포했다. 마지막까지 폴란드 망명정부를 국가로 인정한 나라는 [[아일랜드]], [[스페인국|프랑코 치하의 스페인]], [[바티칸 시국]] 정도이다. 한가지 웃긴 건 마지막으로 폴란드 망명정부를 국가로 인정하던 바티칸 시국이 이를 철회한 게 1979년인데 이 시점이 폴란드인이었던 [[요한 바오로 2세]]가 교황에 즉위한 해였다는 것. 더 나아가 폴란드 망명정부의 본청에서 1954년부터 1972년까지 내분이 일어나 수뇌부가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August_Zaleski|아우구스트 잘레스키]] 대통령과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Rada_Trzech|3인 위원회]] 양쪽으로 분열하는 사태까지 터졌는데, 때마침 [[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]]가 집권한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회유에 넘어가 투항하면서 귀국하는 정치인들도 늘어났다.[* 고무우카는 스탈린 시절의 소련에 대항한 정치인이라는 명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해외동포들을 포섭하려고 애썼는데,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Bundesautobahn_2|동독의 시골을 지나가는 방식으로 서베를린과 서독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에]]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VT0uvu1xh_8|모국 방문을 권유하는 광고를]]([[영어|VISIT POLAND]] 또는 [[프랑스어|VISITE LA POLOGNE]]) 내걸었고, [[LOT 폴란드 항공]]의 [[여객기]]가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West_Berlin_Air_Corridor|동베를린을 경유하면서]]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LOT_Polish_Airlines#LOT_during_Polish_People's_Republic|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 취항했다고]] [[카더라]].] 이런 악재의 연속에도 폴란드 망명정부는 그들을 지지하는 [[자유 폴란드군]] 출신의 15만여 폴란드인들과 함께 꿋꿋이 버텨나가며 공산주의 폴란드에 대항하는 반정부 운동을 펼쳤는데, 폴란드 국내의 민주화 운동은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'''제2사회'''가 주도했기 때문에[* [[https://www.dailynk.com/김정일-이후-北-대안-엘리트를-키워/|#]]] 폴란드 본토를 떠나 해외로 유학한 청년들을 [[삼성장학생|장학금으로 포섭하면서]] 정보를 교환하는 밀사로 활용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